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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및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4·19혁명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및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는 2014년 3월 설립이후 관련 사료수집에 전념해왔으며 기록물 추가 수집 및 구술채록, 세부 학술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http://419unesco.kr/해당기관 세계기록유산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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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및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4·19혁명 기록물
Archives of the April 19 Revolution
(사)4.19혁명유엔유네스코세게기록유산등재및기념사업추진위원회 사무총장 _ 조성구
4·19혁명 기록물은 1960년 4월 19일 한국에서 학생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시민혁명 자료를 말한다. 1960년 2·28 대구 학생 시위부터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까지 그 원인, 전개 과정, 그리고 혁명 이후 사건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피해자 보상 등 혁명의 전후 과정과 관련된 일체의 기록물이다.
4·19혁명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지 15년, 냉전이 빚은 한국전쟁 종료 이후 7년밖에 안 된 아시아의 최빈국이며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아래로부터 일어난 성공한 혁명이었다. 독재정권의 앞잡이 경찰의 발포로 무고한 학생과 시민 186명이 사망했고 6,026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그리고 시민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끝까지 싸워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 정부를 수립했다. 이는 전후 제3세계에서 일어난 최초의 성공한 비폭력 시민혁명인 동시에 유럽의 68혁명, 미국의 반전운동, 일본의 안보투쟁(전공투) 등 1960년대를 휩쓴 세계적인 학생 저항운동의 시발점이었다.
한국은 2차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독립했다. 그러나 미·소 분할점령으로 불가피하게 남북이 분단되었고, 1950년 세계적 규모의 비극적인 한국전쟁을 3년 동안 치렀다.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다. 약 450만의 사상자와 45%의 산업시설이 파괴되었고 분단은 계속되었다. 냉전 반공 독재가 민주주의를 압살했다. 1952년 <더 타임스>에 실린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구하는 것과 같다”라는 문장이 세계 일반의 시각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4·19혁명으로 세계의 일반 시각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그러므로 4·19혁명 기록물은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역사적 조건에서 10살 안팎의 아이부터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자발적으로 독재에 맞서 비폭력으로 민주주의를 이룬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사료이다. 4·19혁명의 숱한 현장 사진기록과 수기들은 우리가 왜 민주주의를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지, 그리고 민주주의 지키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우쳐 주는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세계 교과서가 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