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별 모아보기
국립고궁박물관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시대와 대한제국기의 격조 높은 왕실유물을 전시하여 조선왕조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역사관을 정립하고자 조선왕조 정궁인 경복궁과 연계한 문화 공간으로 조성되어 광본 60주년이 되는 2005년 8월 부분 개관, 2007년 11월에 전면 개관하였습니다.
https://www.gogung.go.kr/해당기관 세계기록유산 소장품
-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Royal Seal and Investiture Book Collection of the Joseon Dynasty
Royal Seal and Investiture Book Collection of the Joseon Dynasty
국립고궁박물관 _ 서 준
조선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1335~1408, 재위 1392∼1398)는 유교·주자성리학을 국정교학國定敎學으로 수용하여 통치이념을 정비했으며,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겨 새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통치의 중심 공간인 경복궁을 짓고 『주례周禮』 등을 참고로 하여 궁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왕실 조상의 신주神主와 책보冊寶(어책과 어보)를 모신 종묘宗廟를, 우측에는 땅과 곡식의 신을 모신 사직단社稷壇을 세우고 제사하였는데, 종묘사직은 유교 국가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책보는 중국 주나라 때부터 제작하여 태묘太廟, 곧 종묘에 봉안한 데서 시작된다. 유교문화권에 속하는 역대 왕조에서는 일찍부터 이러한 제도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부터 이러한 제도가 시행되어 고려를 거쳐 조선조에까지 이어졌다. 종묘 각 신실神室 중앙에 신주장神主欌을 만들어 왕실 조상의 위패를 봉안하고, 좌측 보장寶欌에는 어보御寶를, 우측 책장冊欌에는 어책御冊(옥책, 죽책, 금책), 교명敎命, 국조보감國朝寶鑑 등을 예물로 봉안하고 조상신의 신물神物로 존숭하였다. 이러한 어보와 어책은 조선조 건국 초부터 현대까지 57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제작되어 봉헌되었는데, 이러한 봉헌 사례는 조선이 유일무이하다.
조선왕조의 왕위는 세습이었다. 국왕의 자리를 이을 아들이나 손자 등(또는 왕실의 승계자)은 국본國本으로서 왕위에 오르기 전에 왕세자나 왕세손에 책봉되는 전례典禮를 거쳐야 했다. 어보와 어책은 일차적으로 이와 같은 봉작封爵 전례의 예물로 제작했다. 이에는 통치자로서 알아야할 유교와 성리학의 덕목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문구가 들어있다. 왕세자나 왕세손에 책봉되면 그 징표로 국왕에게서 옥인玉印, 죽책竹冊, 교명敎命을 받음으로써 왕권의 계승자로서 정통성을 인정받았다. 이들이 성혼한 경우에는 이들의 빈嬪도 같은 과정을 거쳤다. 왕세자나 왕세손이 국왕에 즉위하면 즉위식에서 왕비도 금보金寶, 옥책玉冊, 교명敎命을 받았다. 왕과 왕비가 승하한 뒤에 묘호廟號와 시호諡號가 정해지면 시보諡寶와 시책諡冊을 올렸다. 그 밖에 추봉追封, 존호尊號, 휘호徽號 등을 받을 때에도 어보와 어책을 제작하였다. 왕과 왕비가 일생에 걸쳐 받은 책보는 신주와 함께 종묘에 봉안되었다.
국왕이 공식문서에 날인하는 행정 실무용인 국새國璽와 달리 어보는 전례를 치를 당시의 명칭을 새겨 왕실 의례용儀禮用 인장으로 사용하였다. 어보의 보문寶文과 어책에 쓰일 문구는 당대의 문장가가 짓고, 선정된 전문서사관篆文書寫官이 구첩전九疊篆으로 글씨를 쓰면 각장刻匠이 새겼다. 어보의 크기는 가로 세로 모두 같으며, 재료는 금, 은, 옥 등을 사용하였다. 손잡이와 영자纓子 등 장식물을 달아 장엄하게 보이도록 하였다. 이처럼 어보는 조선조 고유의 독창성을 지닌 의장용 예물이었다.
어책은 어보에 새긴 명칭의 내용과 의미 등을 보다 상세하게 문장으로 정리해서 만든 것으로 왕실 인사로서 지녀야할 덕목이 주 내용이다. 재료는 금동, 옥, 대나무[竹], 비단 등을 사용했다. 책보를 제작하여 봉안하는 과정은 의궤儀軌로 발간하여 남김으로써 그 신성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한편 후대에 참고가 되도록 하였다. 책보는 종묘 정전正殿과 영녕전永寧殿에 봉안하는데, 정식으로 책봉된 왕과 왕비뿐만 아니라 추존왕과 왕비도 포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