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소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지역위원회 의장 | 김귀배
세계의 기억, 세계기록유산
우리가 흔히 세계기록유산이라고 알고 있는 유네스코(UNESCO)1) 세계기록유산 사업의 정식명칭은 ‘세계의 기억(Memory of the World)’이다. 즉, 인류의 다양한 기억들을 잘 보호하고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이다. 우리인류는 선조들의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고 익히며 축적된 지혜를 바탕으로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한 의미에서 기록을 통해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집단적인 기억은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하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며 미래를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기록유산이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건축물과 기념물, 그리고 고고학적 유산과 같은 부동산 유산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법적 장치나 정책을 통해 적극적인 보호를 하고 있는 반면에 기록유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상대적으로 저조한 편이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기록유산들이 적절히 보호받지 못하고 자연재해나 전쟁과 같은 인위적인 파괴로 인해 훼손되고 있다. 특히 기록유산은 그 특성상 화학적으로 불안정하고 쉽게 분해되는 천연재료, 합성재료 또는 유기물로 만들어져 홍수나 화재와 같은 자연재해, 약탈과 사고 또는 전쟁과 같은 인간이 초래한 재난, 관리와 보존 작업의 소홀이나 무지로 인하여 쉽게 훼손된다.
기록유산 사업이 영화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현재 영화 분야는 1895년 프랑스 파리의 그랑 카페에서 뤼미에르 형제(Louis Lumière)가 세계 최초로 영화를 상영한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유네스코는 초창기부터 평화와 관용을 주제로 필름과 관련된 여러 행사를 조직함으로써 영화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영화 분야는 기술의 진보로 인해 점차 활성화되었지만 기록물로서 영화의 가치는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결국 보존 인식의 부족으로 초창기 필름의 3/4 정도가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유네스코는 기록유산 사업을 시작하였다(Joie Springer, 1995). 기록유산이 국제적인 관심을 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92년 8월 보스니아 내전 와중에 벌어진 국립도서관 파괴 사건이었다. 당시 사라예보가 무차별 폭격을 당하던 때에 유서 깊은 국립도서관이 불길에 휩싸이면서 13세기부터 모아 소장해 온 도서 150만 점이 모두 잿더미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이 소식을 접한 세계의 지식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인류의 정신적 자산인 기록유산의 보존 필요성을 각성하기에 이르렀다(서경호, 2014). 그리고 유네스코는 1995년부터 위험에 처한 기록물과 컬렉션들을 지정해 보존함으로써, 전 세계에 있는 기록유산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세계기록유산의 목록화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 사업의 중요한 목적은 3가지로 나뉜다. 첫째, 세계적으로 중요한 기록유산을 적절히 보존하는 것, 둘째, 지정된 기록유산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강화하는 것, 셋째, 기록유산의 목록화 작업을 장려하고 기록유산의 중요성에 대한 전 세계인의 인식을 높이는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엠블럼>
세계기록유산의 상징 도안은 기억의 공백 및 기억의 손실을 형상화한 하이코 휴너코프(Heiko Huennerkopf)의 작품으로 2009년 채택되었다. 과거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인류의 역사는 양피지와 파피루스 종이가 발명되며 기록되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바로 도안의 기초가 되었다. 두루마리 형태는 저작권을 뜻하는 동시에 지구, 축음기, 두루마리 필름, 그리고 원반을 형상화한 것이다.
(자료 출전 :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홈페이지(http://heritage.unesco.or.kr/mow/mow_intro/))
이 사업은 2년마다 개최되는 IAC(International Advisory Committee : 국제자문위원회) 회의를 통해 세계적인 가치가 있는 기록물을 선정, 그 목록을 작성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세계기록유산으로는 『구텐베르크 성경』, 『안네의 일기』 등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7년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과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그리고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이 함께 등재되면서 모두 16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아시아지역 세계기록유산 최다 보유국이고, 전 세계로 따져도 네 번째로 많은 세계기록유산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사실에만 주목할 뿐, 유네스코가 우리 기록물의 어떠한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해서 목록에 등재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국제적으로도 세계기록유산 사업은 국제 규약에 근거한 사업이 아니라는 취약점 때문에, 세계유산이나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비해 각국 정부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저조하였다. 그러다가 2015년 ‘역사 왜곡’이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신청한 『난징대학살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되면서 새롭게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1) 유엔전문기구로 공식 명칭은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