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소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지역위원회 의장 | 김귀배
세계기록유산의 등재 대상, 기준, 절차
우리나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기록유산의 강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의 나라이기도 하다. 특히 『직지』는 한국의 발달한 인쇄문화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산이다.
그럼, 한국의 자랑스러운 기록유산인 『직지』에 대해 한번 살펴보자. 『직지』는 선의 요체를 깨닫는 데 필요한 내용을 뽑아 정리한 책으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다. 『구텐베르크 성경』보다 무려 70여 년이나 앞서 제작됐다. 일반적으로 나침판, 종이, 화약과 더불어 세계 4대 발명으로 인정받고 있는 인쇄술의 발명은 인류문명을 한 단계 도약하게 만든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 중에서도 금속활자의 발명은 정보의 보급과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차원에서도 인류문명사에 큰 의미가 있다.
『직지』는 상·하권 2권으로 인쇄되었는데, 아쉽게도 상권은 발견되지 않았고 하권은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보관 중이다. 구한말 주한 프랑스 공사를 지낸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에 의해 프랑스로 반입된 뒤 여러 과정을 거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오랜 기간 세상에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직지』는 1960년대 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근무하던 박병선 박사에게 발견되면서 빛을 보게 되었다. 박병선 박사는 『직지』 맨 뒷장에서 ‘1377년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되었다’는 기록을 보고 온갖 어려움 끝에 최초의 금속활자본임을 증명하게 된다. 2001년 청주시는 『직지』를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려고 하였으나 소장자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이기 때문에 등재 가능성이 희박했다. 유네스코 사무국에서도 『직지』 등재신청 건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이전까지 소장자가 등재를 신청한 사례는 있었지만 제3자가 등재를 신청한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천신만고 끝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동의를 극적으로 받아냄으로써 2001년 청주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에서 사실상 『직지』의 등재가 결정되었다. 『직지』는 현재는 소장하고 있지 않지만 원소유국이 신청해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킨 첫 번째 사례였다.
『동의보감』의 사례도 매우 흥미롭다. 『동의보감』은 2009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등재 준비과정에서 가장 큰 난관은 『동의보감』의 세계적 가치를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것이었다. 국내에서조차 ‘한의학은 중국에서 전해온 것인데 우리의 한의서가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동의보감』의 등재신청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동의보감』이 17세기 초에 왕명에 따라 발간된 의학서적으로서, 국가가 주도한 ‘세계 최초의 공중보건의서’라는 점이었다. 서양에서 공중보건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시기가 19세기임을 감안하면, 이미 우리나라는 서양보다 몇 세기나 앞서 공중보건 개념을 도입하였으며, 그 증거가 『동의보감』인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의학서가 병증에 대한 사후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동의보감』은 병을 예방하기 위한 처방, 즉 ‘예방의학’의 개념을 서양보다 몇 세기나 빨리 도입했다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두 가지 사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의 기록유산은 각각 독특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아래 [표3]은 우리나라 세계기록유산의 세계적 가치를 요약해 정리한 것이다.
[표3] 한국 세계기록유산의 세계적 가치 요약
유산명 | 등재연도 | 세계적 가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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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訓民正音』 [해례본] | 1997 | 독창적으로 새 문자를 만들고 한 국가의 공용문자로 사용하게 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 한글의 창제 원리를 담은 기록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1997 | 472년간의 역사를 수록한 것으로서 한 왕조의 역사적 기록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에 걸친 기록 |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白雲和尙秒錄佛祖直指心體要節』 권하卷下 | 2001 |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이용하여 인쇄된 기록물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2001 | 중국의 『중국 25사』(3,386책, 약 4,000만 자) 및 우리나라 『조선왕조실록』(888책, 5,400만 자)보다 더 방대한 세계 최대의 연대 기록물(총 3,243책, 글자 수 2억 4,250만 자) |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 高麗大藏經版-諸經版 |
2007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정확하며 가장 완벽한 불교 대장경 |
조선왕조 『의궤(儀軌』 | 2007 | 장기간에 걸쳐 조선왕조의 주요 의식을 방대한 양의 그림과 글로 체계적으로 담고 있으며 이러한 유형은 동서양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음 |
『동의보감東醫寶鑑』 | 2009 | 일반 민중이 쉽게 사용 가능한 의학지식을 편집한 세계 최초의 공중보건의서 |
『일성록日省錄』 | 2011 | 동서양의 정치 및 문화교류를 상세히 기록한 왕의 일기 |
1980년 인권기록유산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 2011 | 광주 민주화 운동의 발발과 진압, 그리고 이후의 진상 규명과 보상 등의 과정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를 포함한 문건. 한국의 인권과 민주화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국제적으로는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의 민주화 운동에 영향을 줌 |
『난중일기亂中日記』: 이순신 장군의 진중일기陣中日記 | 2013 | 전시에 지휘관이 직접 작성한 독특한 기록물, 당시 국제전쟁으로서의 동아시아 전투상황에 대한 상세한 기록뿐만 아니라 당시의 기후나 지형, 일반 서민들의 삶을 상세히 기록한 중요한 연구자료 |
새마을운동 기록물 | 2013 | 새마을운동 기록물 2013 빈곤퇴치, 여성인권 향상, 근대화의 모델로서 현재까지 전 세계 18개국에서 157개 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학습자료로도 활용 |
한국의 유교책판 | 2015 | 제작 과정부터 비용까지 자체적으로 분담하는 ‘공동체 출판’이라는 출판 방식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매우 특징적인 출판 방식, 500년 이상 지속된 유학을 바탕으로 한 ‘집단지성’의 결과물로서 세계적 가치를 지님 |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 | 2015 | KBS가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부터 11월 14일 새벽 4시까지 진행한 단일 방송으로는 가장 긴 138일의 방송물로서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되겠다는 교훈을 담음 |
조성왕실 어보와 어책 | 2017 | 조선왕실의 의장용 도장과 교서로서 1392년부터 1966년까지 570여 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제작하여 봉헌한 사례는 한국이 유일무이함. 당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의 시대적 변천상을 반영하였다는 점에서 뛰어난 가치를 지닌 기록물 |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 2017 | 한국의 국채보상운동은 이후에 일어난 운동과 비교하여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것으로 가장 긴 기간 동안 전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적 기부운동이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이며, 당시의 역사적 기록물이 유일하게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역사적 가치가 큰 기록물 |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 | 2017 | 17-19세기 한·일간 평화구축과 문화교류의 역사로서 단순히 전쟁의 재발방지를 넘어 신뢰를 기반으로 한 조선과 일본의 평화와 우호를 상징하는 기록물 |
(자료 출전 : 세계기록유산 보호를 위한 운영지침(2002, 유네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