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Royal Seal and Investiture Book Collection of the Joseon Dynasty

어보 수난사_광복이후

종묘에 소장된 어보는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상당수 분실되었다. 1945년 8·15 광복을 전후하여 난민들이 창덕궁에 몰려들어 물건을 나르는 모양이 마치 동대문시장 같았다고 하며 한국전쟁 당시 1952년의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 내용으로 피해 상황을 추정해 볼 수 있다.


1952년 4월 27일. 옥새 또 발견, 서울 銀房에서 압수
서울지구 계엄민사부에서는 24일 오후 4시경에 또다시 세 번째의 옥새를 발견하였다. 즉 시내 모 은방에서 미군 관계의 부탁으로 옥새를 감정중이라는 정보를 얻은 서울 계엄민사부에서는 즉시 동 은방으로 출동하여 옥새를 압수하였다 한다.

1952년 5월 21일. 두 개의 옥새 또 발견! 서울서 왕인과 왕후인을 서울 지구에 옥새 두 개가 또 발견되어 방금 한국은행 서울 분실에서 보관중이니 문교부에서 국보여부에 관한 감정을 하여 달라고 19일 신(태영)국방장관에게 이 서장이 왔다 한다. 두 개의 옥새 중 하나는 왕인이고 하나는 왕후인인데 왕인은 지난 2월 28일 13시경 미군기지사령부 소속 미군하사(이름未知)가 서울시 동대문구 동숭동(番地不詳)에서 발견한 것이고 왕후인은 지난 4월24일 13시경 서울시 중구 남대문동3가 32번지에서 서울지구 미헌병사령부 소속 미군 헌병하사(이름未知)가 각각 발견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두 개의 옥새의 구조는 금색구형龜形인데 왕인의 인영印影에는 「純定安莊 景順敦孝 大王之寶」라고 씌어있고 왕후인의 인영에는「端良齊敬 定順 王后之寶」라고 씌어 있었다한다. 한편 의뢰를 받은 문교부 당국에서는 과연 그 옥새가 국보적인 것인지에 대하여 즉시 조사에 착수하는 동시에 금번 발견 된 것이 발굴한 것이 아니고 개인 집에서 미군이 발견한 것인바 과연 새로 발견된 것인지 아니면 과거 국립문화시설에 보관 중이었던 것이 6․25사변 당시 시장으로 흘러나온 것인지도 알 수 없다고 보고 있다.


4월 27일 기사의 옥새는 어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며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다. 기사 내용에서 ‘세 번째의 옥새를 발견하였다.’라는 내용으로 보아 전쟁 중에 분실된 어보가 상당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5월 21일 기사의 어보는 단종과 단종비의 어보이다. 현재 이 어보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등록되어 있으며, 국립춘천박물관에 전시중이다.
이 밖에도 태종·세조·덕종·현종의 어보는 도난당해 한 과도 남아있지 않다. 현종과 현종비의 어보는 20세기 초반에만 하더라도 종묘 신실에 모두 합쳐 9과의 어보가 있었으나, 현재는 현종의 것은 모두 소실되었고, 1684년(숙종 10) 제작된 현종비 금보 1과와 옥보 1과만 현존하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아닌 곳에서 소장하고 있는 어보는 광복, 한국전쟁 등 혼란한 틈을 타 종묘에서 유출된 어보들로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고종 어보 2과顆와 고종비 명성황후 어보 1과, 그리고 영빈이씨 은인 1과와 고종 후궁 순비엄씨 금보 1과 가 소장되어 있다. 고려대학교박물관에는 태종비 원경왕후 금인 1과와 현종비 명성왕후 옥보 1과가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미국 라크마(LACMA)에 있었던 중종비 문정왕후 상존호 금보와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현종 왕세자 책봉 옥인은 모두 한국전쟁 때 분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2017년 환수되어 국립고궁박물관에 수장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본격적인 관리와 보존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분실된 어보가 있다. 1784년(정조 8) 제작된 영조 추상 존호보와 1906년 제작된 순종비 순명효황후 금보이다.

영조금보는 1784년(정조 8)에 문효세자 책봉과 영조즉위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영조에게 ‘배명수통配命垂統 경력홍휴景曆洪休’라는 추상존호를 올리면서 제작한 것으로 금보귀뉴이다. 1971년 편찬된 『고궁인존古宮印存』에는 수록되어 있으나 현재 유물은 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1971년부터 1985년 사이 분실된 것으로 보인다.

순종비 순명효황후 어보는 1907년(융희 1) 황후로 추봉하면서 금보 용뉴로 제작한 것이다. 『동아일보』 1963년 2월 2일자 신문 문화면에 ‘처음 公開된 李朝王室遺物’ 기사에 이 어보가 전시되어 있는 모습이 실려 있으나, 『고궁인존古宮印存』에는 이 어보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전시 중, 혹은 전시를 마친 시점에 분실된 것으로 보인다.